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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반이 조끼를 주문하면서 애쉬 것도 하나 같이 담았습니다.
반이는 나이가 들어 실내에서도 얇은 옷을 입고 지내는데, 애쉬도 같이 입히면 되겠거니 생각한 것입니다. 옷이 도착한 날 저녁, 애쉬에게 조심스럽게 입혀 봤습니다.
애쉬는 옆으로 스르륵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배를 바닥에 딱 붙인 채 기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눈동자는 까맣게 커져 있었고 귀는 뒤로 완전히 눕혀져 있었습니다. 3분도 못 버티고 벗겨 줬습니다. 같은 집에서 반이는 옷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데 애쉬는 이랬습니다.
오늘은 그날 이후로 알아본 고양이 옷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보려 합니다.
고양이에게 옷은 필수가 아니었습니다
강아지와 다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고양이에게 옷은 목적이 분명할 때만 쓰는 도구였습니다.
찾아보니 옷이 정말 필요한 경우는 세 가지 정도로 좁혀지더군요.
- 수술 후 상처 보호 — 중성화나 다른 수술을 받은 뒤 상처를 핥지 못하게 해야 할 때입니다. 딱딱한 넥카라보다 부드러운 환묘복이 밥 먹고 잠자기에 훨씬 편합니다.
- 과도한 그루밍 차단 — 특정 부위를 피가 날 정도로 핥는 경우 피부를 덮어 줄 필요가 있습니다.
- 체온 조절이 어려운 경우 — 털이 없는 묘종이나, 스스로 체온을 유지하기 힘든 노령묘와 아픈 아이들입니다.
애쉬는 셋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가 반이와 똑같이 챙겨 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진을 남기거나 보기 좋게 하려고 옷을 오래 입혀 두는 건 아이 입장에서 얻을 게 하나도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아지 옷은 산책이나 보온처럼 실제 쓰임이 분명한 경우가 많은데, 고양이는 대부분 실내에서만 지내니 그런 쓰임 자체가 드뭅니다.
굳어 버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애쉬가 쓰러진 게 유별난 반응이 아니었습니다.
고양이 털은 그저 몸을 덮는 게 아니라 공기 흐름과 진동을 감지하는 감각 기관 역할을 합니다. 옷이 몸을 넓게 압박하면 그 감각이 한꺼번에 막히면서, 포식자에게 붙잡혔다고 착각하거나 감각 과부하가 걸립니다. 그래서 몸이 굳는 것이었습니다.
불편하다는 신호는 몇 가지로 나타납니다.
- 입히자마자 돌처럼 굳어 한 발짝도 못 떼거나 옆으로 쓰러집니다.
- 배를 바닥에 바짝 붙인 채 기어 다니듯 걷습니다.
- 동공이 까맣고 크게 커지고 호흡이 빨라집니다.
- 귀를 뒤로 바짝 눕히고 꼬리를 아래로 내립니다.
애쉬는 이 목록을 거의 다 보여 줬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날 그 모습이 웃겨서 사진을 몇 장 찍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는 그 시간 내내 겁에 질려 있었던 겁니다.
여름에 옷을 입히는 건 특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고양이는 사람처럼 온몸으로 땀을 흘려 열을 식히지 못하고 주로 발바닥과 호흡으로 내보냅니다. 얇은 옷이라도 몸을 계속 감싸면 털 사이 공기 흐름이 막혀 열이 갇힐 수 있습니다. 햇빛을 가려 준다는 기대보다 체온이 오르는 부담이 더 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꼭 입혀야 한다면 이 순서로
수술처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충격을 줄이는 순서가 있습니다.
- 며칠 전부터 옷을 꺼내 두세요. 거실 바닥에 그냥 놓아두면 집 안 냄새와 아이 냄새가 옷에 배어 낯설음이 줄어듭니다.
- 먼저 등에 얹기만 하세요. 팔을 끼우지 말고 부드러운 천이나 옷을 등 위에 슬쩍 올려 두고 간식을 주는 단계를 거치시면 됩니다.
- 사이즈는 넉넉하게. 몸무게만 보고 사면 실패합니다. 목둘레와 가슴둘레, 등길이를 줄자로 재시고, 목과 겨드랑이에 손가락 한두 개가 부드럽게 들어갈 여유를 두세요. 장모종은 털을 살짝 누른 상태로 재야 정확합니다.
- 목적을 달성하면 바로 벗기세요. 오래 입히면 털 속에 피지가 고여 피부염으로 이어지고, 무엇보다 스스로 몸을 다듬는 그루밍이 막혀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 소재는 신축성 있는 면으로. 뻣뻣한 원단은 움직일 때마다 걸립니다. 봉제 부분이 겨드랑이를 쓸지 않는지도 한 번 만져 보시면 좋습니다.
- 세탁은 무향으로. 고양이는 향에 예민해서 자기 냄새가 사라진 옷을 훨씬 심하게 거부합니다. 향이 강한 세제나 섬유유연제는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보온이 목적이라면 옷보다 나은 방법이 있습니다
춥지 않을까 걱정되어 옷을 찾는 경우라면, 옷보다 환경을 바꾸는 쪽이 고양이 본능에 훨씬 잘 맞습니다.
햇볕 드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제일 효과적이었습니다. 애쉬는 낮에 햇살이 들어오는 자리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거기에 담요만 깔아 주면 알아서 찾아가 앉습니다.
겨울에는 반려동물 전용 온열 매트를 잠자리에 두는 방법도 있습니다. 다만 저온 화상을 막기 위해 매트 위에 두툼한 담요를 한 장 덧대 주시는 게 안전합니다. 외출할 때 보일러를 예약해 두거나 외풍이 들어오는 문틈을 막는 것도 옷 한 벌보다 확실합니다.
옷은 아이가 벗을 수 없지만, 따뜻한 자리는 아이가 스스로 고르고 떠날 수 있습니다. 이 차이가 생각보다 큽니다. 고양이는 온도가 마음에 안 들면 알아서 자리를 옮기는 동물인데, 옷은 그 선택권을 통째로 빼앗는 물건이더군요.
저는 수의사가 아닙니다
이 글은 애쉬와 8년을 지내며 겪은 일과 그 과정에서 찾아본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수의사가 아니라 여기 적은 기준이 모든 아이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수술 후 환묘복이나 오버그루밍 관리처럼 치료와 관련된 경우에는 담당 수의사가 권하는 방식을 따르시는 게 맞습니다. 특정 부위를 계속 핥는 행동이 이어진다면 옷으로 덮기 전에 원인을 먼저 확인하셔야 합니다.
옷장에는 반이 것만 있습니다
그날 애쉬에게 입혔던 조끼는 아직 서랍에 그대로 있습니다. 언젠가 수술 같은 일로 필요해질지 몰라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한 번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같은 집에서 자라는 두 아이인데 옷에 대한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반이는 겨울에 조끼를 들면 알아서 다가와 서고, 애쉬는 옷이라는 물건 자체가 위협입니다. 반려동물 용품을 고를 때 종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 생각했던 게 제 실수였습니다. 애쉬에게 필요했던 건 옷이 아니라 햇볕 드는 창가 자리 하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