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스크래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

고양이 스크래쳐

회의 중에 애쉬가 소파 옆면을 벅벅 긁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를 급히 음소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다가가자 애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저를 쳐다봤습니다. 그 무렵 저희 집 천 소파 왼쪽 모서리는 이미 실밥이 다 일어나 있었습니다.

저는 하루 종일 집에서 일합니다. 그래서 애쉬가 언제 소파를 긁는지 몇 주에 걸쳐 다 봤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있습니다. 긁는 시점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택배 벨이 울린 직후, 제가 오래 앉아 있다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리고 반이가 산책을 마치고 현관으로 들어올 때였습니다. 셋 다 애쉬 입장에서는 마음이 크게 움직이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스크래쳐를 발톱 가는 물건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그 뒤로 찾아보고 바꿔 본 것들을 고양이 스크래쳐 고르는 기준으로 정리해보려 합니다.

발톱 가는 물건이 아니었다

찾아보니 긁는 행동에는 역할이 여럿 있었습니다.

고양이 발톱은 층으로 자라서, 긁으면 바깥쪽의 낡은 껍질이 벗겨지고 안쪽 새 발톱이 드러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알던 전부였습니다.

나머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발바닥 젤리에는 냄새샘이 있어서, 긁으면서 자기 냄새를 묻혀 영역을 표시합니다. 긁힌 자국 자체도 다른 고양이에게 보내는 신호가 됩니다. 감정이 올라올 때 긁어서 가라앉히는 역할도 하고, 자고 일어나 앞다리를 쭉 뻗을 때는 전신 스트레칭 도구가 됩니다.

애쉬가 택배 벨 소리에 반응해 소파로 달려간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낯선 소리에 올라온 긴장을 어디엔가 풀어야 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애쉬의 감정 배출구를 두고 그동안 소파 망친다고 혼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긁는 방향이 답을 알려준다

제품을 고르기 전에 아이가 어느 방향으로 긁는지부터 보시면 됩니다. 이것만 봐도 절반은 정해집니다.

  • 수직형·기둥형 — 벽지나 소파 옆면처럼 세로면을 긁는 아이에게 맞습니다. 몸을 위로 쭉 펴면서 긁고 싶다는 뜻이거든요.
  • 평판형 — 바닥의 러그나 카펫을 긁는 아이용입니다. 관절 부담이 가장 적어서 나이 든 아이에게도 무리가 없습니다.
  • 소파형 — 가운데가 오목해서 긁다가 그대로 누울 수 있습니다. 스크래쳐이면서 침대인 셈입니다.
  • 박스형·숨숨집형 — 사방이 막혀 있어 긁기와 숨기가 같이 됩니다. 구석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맞습니다.

애쉬는 명백히 첫 번째였습니다. 바닥에 깔아 둔 평판형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면서 소파 옆면만 팠으니까요. 그래서 애쉬 키보다 한참 높은 수직형을 소파 바로 옆에 세웠더니, 며칠 지나 긁는 자리가 옮겨갔습니다. 소파 실밥은 더 이상 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소파 옆면을 긁는다는 건 단순히 그 소파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눈에 잘 띄는 높은 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야생에서 나무줄기 높은 곳을 긁던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라, 구석에 낮게 놓아 준 스크래쳐로는 대체가 안 됩니다. 사람 눈에 거슬리는 자리일수록 아이에게는 좋은 자리인 셈입니다.

사기 전 확인할 네 가지

  1. 크기부터 재세요. 아이가 앞발을 최대로 뻗었을 때보다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수직형이라면 서서 기지개를 켠 키보다 넉넉히 높은 쪽을 고르셔야 합니다. 짧으면 아예 안 씁니다.
  2. 흔들리면 끝입니다. 힘줘 긁을 때 밀리거나 넘어지면 아이는 그 뒤로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묵직하거나 바닥에 미끄럼 방지 처리가 되어 있는지 보세요.
  3. 소재는 취향입니다. 종이 골판지는 대부분 잘 받아들이지만 가루가 날립니다. 삼줄이나 카펫 재질은 부스러기가 적은 대신 촉감을 가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4. 리필이 되는지 확인하세요. 잘 쓰는 아이일수록 빨리 닳습니다. 판만 갈아 끼우거나 뒤집어 쓸 수 있는 구조면 오래 갑니다.

사줬는데 안 쓴다면 위치 문제입니다

좋은 걸 사줬는데도 계속 소파를 긁는다면, 제품이 나쁜 게 아니라 자리가 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지금 긁고 있는 그 자리 바로 옆에 놓는 것입니다. 저도 처음엔 거실 구석에 예쁘게 세워 뒀다가 아무 소용이 없었고, 소파 옆으로 옮기고 나서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는 자리도 좋은 위치입니다.

낯설어한다면 캣닢을 조금 뿌려 두거나, 낚싯대 장난감을 스크래쳐 표면 위로 지나가게 해서 발톱이 자연스럽게 닿게 해 주면 됩니다. 반대로 지키고 싶은 가구에는 매끈한 커버를 씌워 매력을 떨어뜨리면 선택이 더 쉬워집니다.

개수도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한 마리를 키워도 수직형과 평판형을 같이 두는 편이 낫습니다. 아이가 그날 기분에 따라 고르거든요.

발톱을 없애는 건 답이 아닙니다

가구가 계속 망가지면 발톱 제거 수술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발톱만 뽑는 게 아니라 발가락 끝마디 뼈를 잘라내는 수술이고, 여러 나라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긁는 행동은 고쳐야 할 버릇이 아니라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표시에 가깝습니다. 집 안 동선마다 아이 취향에 맞는 스크래쳐를 두고 발톱을 주기적으로 깎아 주는 것만으로 가구 피해는 거의 막을 수 있습니다.

저는 수의사가 아닙니다

이 글은 애쉬와 8년을 지내며 겪은 일과 그 과정에서 찾아본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수의사도 행동 전문가도 아니라 여기 적은 기준이 모든 아이에게 맞지는 않습니다. 긁는 행동이 갑자기 심해졌거나 한 자리를 반복해서 핥고 물어뜯는다면 스트레스나 통증이 원인일 수 있으니 동물병원에서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소파 대신 기둥을 긁습니다

지금 애쉬는 회의 중에도 여전히 긁습니다. 달라진 건 대상뿐입니다. 택배 벨이 울리면 소파가 아니라 그 옆 기둥으로 달려가서 한참을 벅벅 긁다가, 다 하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창가로 갑니다.

돌아보면 제가 한 일은 못 하게 막은 게 아니라 자리를 옮겨 준 것뿐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사람이라 애쉬가 언제 긁는지 볼 수 있었던 게 운이 좋았습니다. 만약 낮에 집이 비어 있었다면 저는 아직도 소파가 왜 저 모양이 됐는지 모른 채, 애쉬만 나무라고 있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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