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사진, 열일곱 살이 되니 오히려 잘 찍힙니다

강아지 잘나온 사진

앨범을 넘기다 보니 반이 사진이 대부분 흐릿합니다.

젊을 때 찍은 것들입니다. 부르면 달려오니까 초점이 안 맞고, 겨우 앉혔다 싶으면 다시 일어나고, 그러다 찍힌 사진은 카메라 쪽을 안 보고 있습니다. 애쉬 사진은 더 심합니다. 화면 밖으로 반쯤 나가 있거나 잔상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진은 다릅니다. 반이가 느려지면서 오히려 또렷하게 남습니다. 좋기만 한 일은 아니지만, 덕분에 저는 사진 찍는 법을 뒤늦게 배우게 됐습니다.

오늘은 그동안 알게 된 반려동물 사진 찍는 법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강아지 사진 찍기, 부르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제가 가장 오래 잘못한 게 이겁니다. 카메라를 들고 이름을 불렀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아이는 고개를 들고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동안 거리가 계속 바뀌니 초점이 안 잡히고, 눈앞까지 오면 코만 크게 나옵니다. 사진을 찍으려는 행동이 사진을 망치는 구조였습니다.

방법을 바꿨습니다. 부르지 않고 아이가 뭔가 하고 있을 때 조용히 찍습니다. 창밖을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자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면 자세도 자연스럽고 표정도 살아 있습니다.

굳이 시선이 필요하면 부르는 대신 작은 소리를 내는 편이 낫습니다. 혀를 차거나 간식 봉지를 살짝 흔들면 아이가 그 자리에서 고개만 돌립니다.

간식을 쓰실 거라면 순서를 정해 두시는 게 좋습니다. 찍고 나서 주는 것입니다. 먼저 보여 주면 아이 시선이 간식에만 붙어서 표정이 굳습니다. 저는 몇 장 찍고 바로 주는 식으로 반복했더니 반이가 카메라를 싫어하지 않게 됐습니다.

고양이 사진, 기다리는 쪽이 빠릅니다

애쉬는 더 어렵습니다. 카메라를 들면 자리를 뜹니다.

고양이는 사람이 자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걸 부담스러워합니다. 렌즈가 향하는 것도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찍는 자세를 안 잡습니다. 폰을 무릎에 올려 둔 채 화면만 보다가 애쉬가 자리를 잡으면 그때 천천히 듭니다.

쫓아다니면 절대 안 찍힙니다. 고양이 사진은 가만히 있는 사람 앞으로 아이가 오기를 기다리는 일에 가깝습니다.

연사 기능도 도움이 됩니다. 셔터를 길게 누르면 여러 장이 한 번에 찍히는데, 그중 한 장은 건집니다. 애쉬처럼 순식간에 자세가 바뀌는 아이에게는 이 방법이 거의 유일했습니다.

반려동물 사진 구도, 눈높이가 절반입니다

서서 내려다보고 찍으면 머리만 크고 몸은 짧게 나옵니다. 사람이 보는 각도라 그렇습니다.

바닥에 엎드려서 찍으면 사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경이 넓게 들어오고 아이가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저는 이걸 알고 나서 거실 바닥에 자주 엎드립니다. 아들이 옆에서 아빠 뭐 하냐고 묻습니다. 요즘은 아들도 같이 엎드려서 찍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눈에 초점을 맞추세요. 코나 몸통이 아니라 눈입니다. 눈이 또렷하면 나머지가 조금 흐려도 사진이 삽니다. 요즘 휴대폰은 화면에서 눈을 한 번 누르면 그쪽으로 초점이 잡힙니다.

배경도 한 번 보시면 좋습니다. 아이 뒤에 빨래나 어질러진 물건이 걸려 있으면 시선이 그쪽으로 흩어집니다. 자리를 옮기기 어렵다면 카메라 위치를 한 발짝만 바꿔도 배경이 정리됩니다.

검은 털과 흰 털, 밝기를 반대로 잡습니다

털색에 따라 카메라가 반대로 착각합니다.

검은 털은 카메라가 어두운 화면을 밝히려 하면서 배경이 하얗게 날아가고 아이 얼굴은 뭉개집니다. 이럴 때는 노출을 낮춰야 털의 결이 살아납니다.

흰 털이나 밝은 털은 반대입니다. 카메라가 밝은 부분에 맞추면서 얼굴이 하얗게 뜹니다. 노출을 조금 올려 잡으면 얼굴 윤곽이 남습니다.

휴대폰에서는 화면을 한 번 누른 뒤 옆에 나오는 밝기 조절을 위아래로 밀면 됩니다. 반이는 밝은 갈색이라 실내에서 얼굴이 잘 날아가서, 저는 살짝 어둡게 잡는 편입니다.

창가 자리가 실내에서 가장 좋은 조명입니다. 애쉬가 늘 앉아 있는 창가에서 찍으면 별다른 장비 없이도 털 결이 살아납니다. 다만 역광이 되면 얼굴이 까맣게 나오니, 빛이 아이 옆에서 들어오도록 서는 위치를 잡으시면 됩니다.

노령견 사진, 지금 찍어야 남습니다

열일곱 살이 되면서 반이 사진이 잘 나오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리에 오래 머물고, 자는 시간이 길고, 이름을 불러도 급하게 반응하지 않습니다. 사진 찍기에는 좋은 조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일부러 특별하지 않은 장면을 찍습니다. 발등에 턱을 올리고 자는 모습, 창가에 누워 있는 모습, 산책하다 멈춰 선 뒷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예쁘게 나온 사진보다 평소 모습이 남은 사진이 나중에 더 소중해진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플래시는 쓰지 마세요. 아이 눈에 자극이 되고, 갑자기 터지면 놀랍니다. 어두우면 커튼을 열거나 조명을 켜는 쪽이 낫습니다.

찍은 사진을 어디에 둘지도 정해 두시면 좋습니다. 휴대폰에만 있으면 기기를 바꾸다 통째로 날아갑니다. 저는 한 달에 한 번쯤 반이와 애쉬 사진만 따로 폴더로 옮겨 둡니다. 열일곱 해 동안 쌓인 사진 중에 잃어버린 것이 꽤 됩니다.

저는 사진 전문가가 아닙니다

이 글은 반이와 애쉬를 찍으며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저는 사진을 배운 적이 없어서 여기 적은 건 어디까지나 휴대폰으로 찍는 수준의 이야기입니다. 다만 아이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사진보다 아이가 먼저라는 것만큼은 확실합니다. 억지로 자세를 잡게 하거나 도망가는 아이를 쫓아가면서까지 찍을 일은 아닙니다.

흐릿한 사진도 버리지 않습니다

앨범에 남은 흐릿한 사진들을 저는 지우지 않았습니다.

초점이 나간 사진 속 반이는 저를 향해 달려오고 있습니다. 그때는 잘 찍고 싶어서 짜증도 났는데, 지금 보니 그 흔들림이 그 시절의 반이입니다. 뛰던 아이라 흔들렸고, 지금은 안 뛰어서 또렷합니다. 사진의 선명도가 아이의 나이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잘 찍는 방법을 알아 두면 좋지만, 결국 남는 건 잘 찍은 사진이 아니라 찍어 둔 사진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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